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크 휴즈 (문단 편집)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기 === || [[파일:external/therepublikofmancunia.com/hughesferguson.jpg|width=100%]] || || '''{{{#ffe500 [[알렉스 퍼거슨]]의 지시를 받고 있는 마크 휴즈.}}}''' || 1988년 5월 18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맨유로 복귀한 휴즈는 이후 7년간 맨유의 핵심 공격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처음 맨유로 복귀했던 1988-89 시즌, 맨유는 실망스런 경기력을 내내 보였고 결국 11위에 그치고 말았다. 다만 휴즈는 리그 38경기 14골, FA컵 7경기 2골을 넣는 등 51경기 16골을 기록하며 선전했다. 그는 다음 시즌엔 브라이언 맥클레어와 함께 맨유의 투톱으로서 활약했고 1989-90 시즌에 37경기 13골, FA 컵 8경기 2골을 넣으며 총합 48경기 15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맨유는 수비력이 매우 좋지 않아 두 공격수가 넣는 골보다 더 많은 실점을 기록하기 일쑤였고 결국 맨유는 13위를 기록하고 말았다. 이에 퍼거슨에 대한 경질론이 거세졌지만 보드진은 퍼거슨에 대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고 퍼거슨은 보드진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팀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이후 휴즈는 다음 시즌부터 맨유의 부흥기를 이끌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90-91 시즌, 휴즈는 유러피언 컵위너스컵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2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기록했다. 이후 휴즈는 이 시즌에 3번의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활약을 선보이며 리그 37경기 10골, FA 컵 8경기 2골, 리그 컵 9경기 6골,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8경기 3골을 기록, 총합 52경기 21골을 넣으며 맨유의 호성적을 이끌어냈다. 그가 기록한 21골은 당시 맨유의 주축 공격수인 브라이언 맥클레어와 그 시즌 센터백으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득점을 했던 [[스티브 브루스]]의 그것을 뛰어넘는 팀내 최다골 기록이었다. 1991-92 시즌, 맨유는 리즈에게 밀려 준우승에 그쳤지만 리그컵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휴즈는 리그 39경기 11골, FA컵 3경기 1골, 유럽 대회 4경기 2골을 기록하며 총합 53경기 14골을 기록했다. 그 후 PL이 출범한 1992-93 시즌에서, 휴즈는 리그에서만 15골을 기록하며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줬고 맨유는 마침내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휴즈는 1993-94 시즌에 더 많은 우승 컵을 쓸어담았다. 그는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모두 달성했고 리그컵 결승에서도 아스톤 빌라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지만 팀이 3:1로 패하는 바람에 3관왕은 실패했다. 그는 이 시즌에 리그 41경기 15골, 리그컵 3경기 1골 등 총합 48경기 16골을 기록했다. 이 시기 휴즈는 맨유의 또다른 레전드인 [[에릭 칸토나]]와 탁월한 파트너십을 맞추며 맨유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휴즈는 1994-95 시즌에 다시 한 번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달성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엔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웨스트햄에게 패하고 그 바람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블랙번 로버스에게 리그 우승을 내주고 말았다. 또한 FA 컵 결승전에서는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결국 에버튼의 FA컵 우승을 저지하지 못했다. 시즌이 끝난 뒤, 그는 15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첼시로 이적했다. 그는 1995년 1월에 맨유를 떠날 수도 있었다. 맨유는 나이가 들어 기량 저하가 뚜렷하게 보이는 휴즈를 대체하기 위해 뉴캐슬으로부터 [[앤디 콜]]을 1월에 영입했다. 이에 당시 에버튼 감독이었던 조 로일은 250만 파운드에 휴즈를 영입하려 했다. 그러나 휴즈는 얼마 후 뉴캐슬과의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해 몇 주간 출장하지 못했다. 결국 에버튼은 그의 영입을 포기하고 다른 공격수를 데려왔다. 게다가 에릭 칸토나가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 도중 자신의 가족을 모욕한 관중을 향해 플라잉 니킥을 작렬하는 바람에 8개월 출장정지를 당하자, 맨유는 그를 겨울에 내보낼 생각을 접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휴즈를 기용했다. 하지만 휴즈는 자신을 내보내려 했던 퍼거슨에게 적잖이 실망했고 벤치 멤버로 남느니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는 게 낫다고 여기고 첼시행을 선택했다. 그는 1988년 맨유 입단 이래 7시즌 동안 352경기에 출장하여 116골을 기록하며 맨유의 부흥기를 이끌어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어쨌든 맨유는 1995년 여름 휴즈와 핵심 미드필더 [[폴 인스]], 붙박이 우측 윙어 안드레이 칸첼스키스를 모두 내보냈고, 이 자리에 일명 '퍼기의 아이들'을 중용하기 시작하면서 맨유의 최전성기를 함께할 신세대 라인업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